[일반] 윤석철 교수 ‘머피 법칙과 대응방안’ 특강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터지게 마련이다(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우리가 머피(Murphy)의 법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비록 확률이 낮은 일이라고 해도 그것을 가볍게 처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성수대교 붕괴부터 식품의 불량 첨가물에 이르기까지 단기적(短期的)으로는 문제될 확률이 낮은 일도 결국은 머피의 법칙 아래 놓이게 된다.”‘한국의 피터 드러커’ 윤석철 교수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과 열정이 넘쳤다.
한국산업기술평가원은 9월 2일(화) 한국기술센터 16층 대회의실에서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를 초청, ‘머피법칙과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마련했다.윤 교수는 서울대 독문학과에서 물리학과로 전과(轉科)해 수석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그 후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강의로 유명하다. 올해 <매경이코노미>지가 선정한 ‘한국의 경영대가 29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던 윤 교수는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을 제시한 경영학 연구로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며 ‘기업의 생존 부등식’ 개념이 소개된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를 비롯해 <경영학의 진리체계> 등 많은 책을 펴냈다.다음은 윤 교수의 강연 내용이다.
머피의 법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첫째, 잘못될 수 있는 상황의 발생 가능성을 설계 단계에서부터 원천봉쇄해야 한다.‘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터지게 마련’이라는 해석은 과학적 근거를 충분히 가진다. 단기적으로는 낮은 확률일지라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확률 자체의 법칙이라 할 수 있는 독립사상(Independent events)의 가산(Addition) 원리에 의해서 충분히 높은 확률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열차가 해저터널 속을 달리다가 탈선사고를 일으킬 확률을 100만분의 1이라고 가정하고, 이런 열차들이 매일 왕복 40회를 왕래한다면, 이 해저터널에서 하루 동안에 탈선 사고가 날 확률은 100만분의 40이 된다. 그러나 각각의 탈선사고는 독립사상이므로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탈선사고가 한 번 일어날 확률은(독립사상 가산원리에 의해) 100만분의 40의 3650(10년×365일)배로 불어나서 무시할 수 없는 크기가 된다. 따라서 터널 공사비가 아무리 부담된다고 해도 두 개의 터널을 뚫고 각 터널에 노선을 하나씩 설치하는 설계를 택하는 것이 합리적 의사결정이 된다. 왜냐하면 한 개의 터널 속에 왕복 노선을 깔면, 어느 한 노선에서 탈선사고가 났을 때 다른 노선으로 열차가 진입해 올 경우 치명적 대형사고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최선의 선택보다 최악의 회피가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 칼 포퍼(Karl Popper) 교수의 철학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수행하는 우주개발 사업에서 초창기에 많았던 대형사고가 최근에 많이 줄어든 것은 NASA가 머피의 법칙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엔지니어링 평론가들의 견해다. 머피의 법칙에 대처하는 방법론 중에 철학자 칼 포퍼의 가르침 ‘최선의 선택보다 최악의 회피가 더 중요하다’는 철학사상이 있다. 예를 들어, 우주 왕복선이 임무를 마치고 플로리다 케네디센터에 착륙하려 할 때, 만약 기후조건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면 착륙 지점을 캘리포니아 에드워드 공군기지로 바꾸는 일이다. 이렇게 하면 우주왕복선을 특수 항공기에 태워서 다시 플로리다로 옮겨야 하고 이 비용이 1억5000만달러나 된다. 만약 작은 사고 확률이라고 무시하며 착륙을 시도하다가 최악의 사태가 발발하면 그때의 비용은 ‘최악의 회피’ 비용보다 몇백 배가 더 비쌀 것이다. 셋째, 복잡도(Complexity)가 높을수록 ‘잘못될 수 있는 요소(anything that can go wrong)’는 증가함으로 ‘간결화(Simplify)’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 온 문자와 숫자의 변천 역시 복잡화가 아니라 단순화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BC3000년 무렵 이집트에는 6000자가 넘는 상형문자가 있었다. 이런 복잡성을 떨쳐버리고 20~30자(한글은 24자, 영어는 26자) 수준으로 문자를 단순화한 민족이 오늘날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숫자도 마찬가지다. 옛날의 이십진법과 십진법 등 복잡한 체계를 떨쳐버리고 오늘날 0과 1만 사용하는 이진법 덕분에 컴퓨터와 디지털 문명이 가능해졌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밍웨이의 문장 속에는 불필요한 말은 찾아볼 수 없고, 필요한 말은 빠진 게 없다. 이런 문체를 ‘하드보일드 스타일(Hard-boiled style)’이라고 하며 많은 작가들이 이를 닮으려 노력한다.
일본 건설중장비 업체 고마쓰는 니혼게이자신문이 뽑은 2007년도 일본 기업 랭킹에서 캐논과 도요타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마사히로 사장은 기종과 사양의 간결화가 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해 세계 일등 상품 비율이 10%에서 30%로 상승한 데 있다고 설명했다. 복잡성을 떨치고 간결성을 추구한 결과다.
윤 교수의 강연에 이어 산기평 연구원들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중장기평가실 최종화 실장은 ‘식품 등 제조공정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인재개발실 박상준 연구원은 ‘엔지니어링 설계 중 더 간결한 방법으로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케이스 발표’, 전략기획실 장효성 수석연구원은 ‘최선의 선택보다 최악의 회피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각각 발표함으로써 직원들의 이해를 도왔다.
산기평 직원들은 “평소 존경하던 윤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다”며 “동서양, 인문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윤 교수님의 해박한 지식과 경륜을 전달받은 것은 물론 풍자와 재치가 가미된 멋진 강의였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