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문호진 산업부 부장대우 재계팀장
“지난 10여년간 CDMA 휴대전화의 원천기술을 장악한 미국의 퀄컴은 국내에 생산 공장 하나 없이 약 3조원의 로열티를 받아갔다. LNG선의 단열공법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의 GTT사는 매년 수천억원의 기술료 수입만으로도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 R&D에 성공한 덕분이다.”
서영주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하 KEIT) 원장은 KEIT를 소개하기에 앞서 외국의 기술개발 성공사례를 들었다. 집중적인 R&D 투자와 일류 첨단기업 육성을 통해 국가 선진화를 이룬 핀란드 스웨덴 스위스 등 북유럽 강소국의 사례도 덧붙였다. 그는 “R&D는 국가경제에 피를 돌게 하는 원동력”이라며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해법도 기술개발에 있다고 강조했다.
서 원장은 ‘기술강국 대한민국’을 향한 KEIT의 향후 비전을 북극성에 비유해 설명했다. 이정표가 없는 사막이나 바다에서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아가듯이, 우리 기업들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매진해야 할 산업기술의 방향타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취임 50일. 통합기관의 조직문화 정착과 업무 혁신으로 바쁜 서 원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KEIT는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 따라 출범했다. 실제 수요자인 기업들에는 어떤 혜택이 있는지 궁금하다.
▶산업기술평가원, 부품소재산업진흥원, 정보통신연구진흥원, 디자인진흥원, 청정생산지원센터 등 6개 R&D 평가 관련 업무가 한 곳으로 통합돼 KEIT가 출범했다. 기존에는 한 개의 사업에 대해 창구가 여러 곳이어서 고객의 불편은 물론 효율적이고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었다. 이번에 여러 개로 분산돼 있던 창구가 단순화되어 행정비용이 절감되고 맞춤형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특히 R&D 과제의 기획, 평가, 성과관리 등 영역별로 산재해 있던 지원기능을 전 주기적 관점에서 통합 지원함으로써 중복지원 등의 비효율성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
-경제가 안 좋다보니 R&D 예산을 지원받으려는 기업들도 크게 늘었을 것 같은데, 어떠한가.
▶지난 6월 2일 접수 마감한 ‘스마트 프로젝트’ 과제 신청은 경쟁률이 10대1에 육박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앞서 열린 설명회에도 당초 500명을 예상했으나 1200명이 오는 바람에 설명회를 2회에 걸쳐 열기도 했다. 6월 18일에 과제 접수가 마감된 정보통신미디어(방송장비)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도 경쟁률이 5대1이다. 1997년 외환위기에서 경험했듯이 위기는 곧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고, 그 열쇠는 산업기술 R&D, 기술혁신에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국가 R&D 자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여전한 것 같다.
▶그동안 여러 측면에서 제도개선이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비 유용사례가 완전히 근절되지는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새로운 연구비관리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구축될 경우 자금 유용이나 부적절한 사용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짐에 따라 연구비 집행의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다. 과제 협약 시 연구비를 현금으로 일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연구비 사용시점에 이체요청을 하면 미리 배당된 비목별 포인트(e-Cash)를 차감한 후 실제 자금을 집행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온라인 증빙을 통해 주관기관이 보다 편리하게 연구비 정산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이 외에도 ‘상시 모니터링 체제 구축’을 통해 연구비 유용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계획이다.
-국내 R&D 활성화를 위해 보완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우선, ‘시장 수요’를 중시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시장에서 활용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가 보편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바코드 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행동이다. 또한 R&D의 결과는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을 도모해야 한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온갖 반발을 무릅쓰고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매진했던 까닭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로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사업화해 새로운 산업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기술과 인재를 중시해야 한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원석을 갈고 닦아서 보석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동시에 필요하다.
-KEIT가 집행하는 R&D 사업 중 특히 중소기업을 위한 것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R&D 자금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KEIT는 올해 예산 중 이미 60% 넘게 사업비를 집행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서면평가, 전자협약 등을 통해 평가기간과 협약기간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킨다든가 기업이 기술개발에 성공해 출연금의 20%를 기술료로 현금 일시납부할 경우 감면비율을 30%에서 40%로 확대하는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수요 조사를 확대하는 등 수요지향형 기술기획 체계를 도입한다. 또 R&D 자금 신청부터 접수까지 전 과정을 온라인에서 관리할 수 있는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통합 관리지침을 제정하는 등 R&D 관리시스템 선진화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KEIT의 주요 역할 중 R&D의 기술기획이 있는데, 평가 이상으로 중요한 임무로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좋은 과실을 얻기 위해서는 씨앗을 잘 골라야 하는 것처럼, 산업원천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기술테마 발굴이 핵심이다. 각계각층의 기술수요를 파악하고, 정부의 산업발전 전략을 종합해 예상후보과제 풀을 구축할 것이다. 그것이 올해 처음 도입되는 과제 뱅크(Bank)제이다. 이를 통해 중복기획과 지원을 방지하고, 기술 트렌드를 적시에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기술개발에서부터 사업화까지 기술개발 성숙단계를 지표화한 TRL(Technology Readiness Level) 기법을 적용해 전주기적인 관리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로써 기획단계에서부터 우리나라의 기술수준과 역량을 분석해 향후 어느 단계까지를 목표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설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 하나는 차년도 과제발굴영역분석(NEPSAㆍNext Project Selection Analysis)이다. 기술개발의 기대수익과 위험도를 포트폴리오로 구성해 기대수익이 크고 위험성이 작은 기술은 성장동력형으로, 기대수익도 크고 위험성도 큰 기술은 원천형으로 구분해 전자는 기업이, 후자는 정부가 나서서 신규과제를 발굴한다.
이 외에도 경제적 타당성 분석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사전에 검토하고, 도출된 신규 후보과제들은 인터넷과 공청회를 통해 대국민 의견을 청취ㆍ반영할 것이다. 특히 발전 속도가 빠르고, 기술수명이 짧은 IT 분야는 기획부터 성과까지 PD(Program Director)가 기술기획을 하고, 그 외의 분야는 해당 산학연 최고전문가로 구성한 기술위원회를 운영한다. KEIT는 지식경제 기술혁신 R&D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기획시스템을 명품화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선진 기술기획에 가장 역점을 두고자 한다.
-KEIT가 올해 역점을 두는 일은 무엇인가.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2005년 기준으로 정부 R&D 예산의 절대규모는 미국의 15분의 1,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나 GDP 대비 비중은 0.84%로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이다. R&D 투자 규모가 늘어난 만큼 반드시 성과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KEIT는 단순하게 R&D 재원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내고 이 지식으로 다시 수익을 창출해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인재경영도 중요하다. 기술은 ‘미래를 위한 보험’과도 같고 기술 혁신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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