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자연에서 찾은 R&D 성장의 비밀 / 아주경제 (2021-07-20)

하루에 두 배까지 증식하는 식물이 있다. 연못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구리밥’이라는 식물이다. 개구리가 사는 곳에서 자라 이름 붙여진 ‘개구리밥’은 물 위에 떠다니며 자라기에 ‘부평초’라고도 불린다. 이 식물이 빨리 성장할 수 있는 비밀은 성장에 필요한 게놈 이외 다른 요소를 포기한 데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뿌리를 깊게 내린다거나, 해충으로부터 보호하는 활동 등이다. 개구리밥은 다른 식물들에 비해 빛과 어둠에 따라 조절되는 유전자가 절반밖에 되지 않아 밤에도 성장한다. 과학자들은 개구리밥에서 발견된 성장의 비밀이 미래 인구를 먹이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으며, 탄소포집기술 등으로도 응용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보면 식물이든 사람이든 결국 성장의 비밀은 ‘선택과 집중’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구리밥’의 성장 DNA 관점에서 보면 ‘R&D 성장의 비밀’은 ‘연구몰입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 R&D(연구개발)의 복잡한 행정절차 때문에 ‘연구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연구현장의 목소리가 빈번하게 들려온다. 국민 세금으로 집행되는 예산이기에 이런 복잡함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 최소한도의 규제는 필요하지만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정부 R&D를 오랫동안 문제없이 수행하며 우수성과를 창출하고 있는 기관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해 8월 산업부는 'R&D 샌드박스'라는 제도를 만들어 우수연구실적이 있는 기관에 대해서는 재무건전성을 만족하면 연구수행절차를 간소화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선정된 신규과제를 대상으로 올해 초까지 44개 과제를 선정하여 연구활동(연구목표변경, 참여기관 변경 등), 사업비사용(비목편성, 자체정산 등), 연구장비 구매 등에 있어 자율성을 확대해 주었다.

올해부터는 'R&D 샌드박스'의 혜택 범위를 더욱 확대했다. 대상기관을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연구소까지 확대하고, 특별히 ‘도전적 R&D’나 국제공동연구를 수행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우수연구실적과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도록 지원조건을 낮추었다. 이에 따라 최근에 개최된 'R&D 샌드박스 운영위원회'에서는 ‘우수실적 보유 연구소 주관 과제’나 ‘도전적 R&D과제’, ‘국제공동연구과제’ 등을 포함하여 심의를 진행하였다. 이번에 추가된 ‘도전적 R&D’는 일명 ‘챌린지트랙’으로도 불린다. 세계 최초·최고의 파괴적 혁신기술을 향해 도전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더욱 유연하게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운영위원회에 참석한 기업들도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촌각을 다퉈 R&D에 몰입해야 하는 급박한 기업들에 'R&D 샌드박스'는 새로운 성장사다리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필자는 복잡한 업무에 직면하면 먼저 책상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워내면 문제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R&D 샌드박스'가 정부 R&D의 규제를 벗어내고 연구에 몰입하는 새로운 문화를 정착하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우수연구결과를 보여준 연구자들에게는 더 높은 신뢰를 부여하고, 새로운 것에 자극받고 도전하는 혁신적 연구에는 보다 유연한 연구환경을 조성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도전적 R&D과제’, ‘국제공동연구과제’에 대한 'R&D 샌드박스' 지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향후에도 R&D가 성장사다리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어떻게 불필요한 것을 비워줄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자료: https://www.ajunews.com/view/20210719103225752